#라인홀드 니버 #문예출판사 #1932
개인의 도덕
고전이라는 명성과는 별개로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냉혹한 매력에 끌려서 일단 책을 집어 들었다. 라인홀드 니버, 부끄럽지만 처음 보는 인물이다. 아주 오래전에 쓰이기도 했고 딱딱한 문체와 생소한 용어들이 많아서 책을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저자가 책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내용은 충분히 공감했지만, ‘번역어’를 ‘한국어’로 해석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이해가 어려운 챕터는 여러 번 다시 읽기도 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책이 다루는 주제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집단의 이기심 때문에 발생한 사회문제는 사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복잡한 이론이나 주제도 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과 비교하면서 생각해보면 이해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입대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나도 입대하게 되었고, 나를 괴롭혔던 악마 같은 상관 때문에 힘들었던 군 생활도 기억난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그 상관을 사회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저기 혹시, ◯◯◯씨 아니신지…” 대화를 이어나갈수록 예상과는 다르게 예의 바르고 상냥한 모습에 적잖게 놀란 기억이 있다. 분명 아무 이유 없이 나를 구박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 또한 군인으로 근무할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매우 다르다. 물리적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라는 근거로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왜 그렇게 달랐던 걸까?
저자 소개
칼 폴 라인홀드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 1892년 6월 21일 ~ 1971년 6월 1일)는 기독교 신앙을 현실적인 현대 정치와 외교에 접목시킨 개신교 신학자이며 기독교 윤리학자이다. 기독교 신앙을 현실적인 현대 정치와 외교에 접목시킨 기독교 현실주의로 유명하다. 그는 미국 미주리 주 라이트 시(Wright city)에서 독일 선교사인 구스타프 니버(Gustav Neibuhr)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리노이 주의 엘름허스트 대학(Elmhurst College)에 입학하여 1910년에 졸업하였으며, 후에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 있는 에덴신학교(Eden Seminary)에서 공부하였다. 그리고 다시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1914년 신학사 학위(Bachelor of Divinity Degree, 약칭 B.D.)를 받고 알파 시그마 파이회(Alpha Sigma Phi Fraternity)의 회원이 되었다. 그가 개신교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1915년이다.
집단의 이기심
위와 같은 모순(矛盾)은 사회 곳곳에서 너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회사 동료를 도구로 이용하는 몰염치한 상관도 집에서는 자상한 가장이자 훌륭한 아버지이고, 친구들에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서울 강서구에 특수학교가 들어오면 집값이 내려간다거나 지역 이미지가 하락한다며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주민들의 행태를 뉴스에서 본 기억난다. 공청회에서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는 장애인 부모들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했고,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이유로 내세운 근거는 결국 경제적 손실이었다. 하지만 강서구의 경제성장 배경에는 사회적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대중교통, 도로, 상권, 공공시설 등의 제반 환경은 사회 구성원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졌다. 그러한 투자가 없었다면 아마 강서구 일대의 부동산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낮았을 것이다. 무릎까지 꿇은 장애인 학부모의 간절한 모습에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지역 공동체의 이기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왜 그런 걸까? 왜 그럴 수 있는 걸까?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보기 쉽다고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과 관련된 행동을 판단할 때 집단과 개인은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주장한다.
개인과 집단
책의 도입 부분에서 니버는 안정적인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선의나 정의의 개념은 개인뿐 아니라 어떠한 집단에게도 요구할 수 있어야 하지만 집단에 요구되는 선의와 정의는 결국 무시되거나 합리화된 방법으로 숨겨져 왔다고 완곡하지만 강렬하게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집단의 도덕이 이처럼 개인의 도덕에 비해 열등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자연적 충돌(사회 응집력에 기여하게되는 자연스러운 사회갈등)에 버금갈 만한 합리적인 사회 세력을 형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며, 또한 개인의 이기적인 충동은 개별적으로 나타날 때보다는 하나의 공통된 충동으로 결합되어 나타날 때 더욱 생생하게 그리고 더욱 누적되어 표출되기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책에서 흥미로웠던 주제는 지배계층의 이기적이지만 특수한 성향에 대한 분석이었다. 국가를 구성하는 집단들의 성향을 파악하면서 주제를 풀어나간다. 사회 지배계급의 비도덕성, 귀족과 유한계급의 노동 혐오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결국 지배층의 정당성 논리는 자기 위선이자 자기기만이라고 팩폭(팩트 폭행)를 날린다.
또한 참정권과 보통교육의 제도화 사례도 제시하는데 보통교육이 참정권보다 쉽게 국가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교육은 특수계급의 특권만이 관계되어있지만, 참정권은 특권과 정치적 권력 모두와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나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자에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특수한 계층집단의 이기심도 국가보다는 개인적 성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교육과 이성에 대한 희망으로는 개선되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겪어온 지배계급에 당한 핍박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한편 저자가 이 책을 쓴 주요 목적 중의 하나는 도덕주의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드는 개혁·진보주의자들의 비현실적인 타성을 질책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를 사는 우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순수한 이성을 믿고 교육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일한 판단이었다. 실제로 이 책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한 사람들은 정부 관료나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개혁 성향의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라인홀드 니버의 주장에 대해 냉소주의, 비관주의, 패배주의 등의 딱지를 붙이며 맹공했다.
‘도덕적 인간’의 함정도 되짚어봐야 한다. 저자는 “개인이 하나의 명분이나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하는 경우에도 권력의지는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고 말한다. 정확한 의미를 추측해 보자면, 공적인 명분과 사적인 출세욕(명예욕)은 뒤섞이기 마련인데, 사적인 출세욕이 공적 명분의 성공을 압도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다. 우리는 부정부패타파와 개혁적 비전을 제시하던 지도자들의 변절과 타락을 수없이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이 책은 개인적 도덕성 역시 사회 정의 실현에 중요한 요소이므로, 늘 조직과 자기 자신을 의심해보라고 개혁·진보주의자들에게 경고 하고 있다.
정의로운 사회와 개인의 이타심
사회를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이다. 그리고 개인을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이다.
개인의 이타심은 비극적이게도,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이기심으로 발현될 수 있다. 서로의 관계가 중요한 요즘 세상에서 개인은 이기적이기 상당히 힘들다. 오히려 타인의 욕망과 충동을 충분히 이해하고 적당한 이타심까지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도덕적인 개인이 모인 집단이라고 해도 이기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이 집단을 통해 투영될 때 개인의 윤리적 저항감은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기적 집단 간 힘의 불평등 때문에 갈등을 빚게 되고 이러한 반목이 사회문제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정치적 압력이고 이를 적절히 사용해야 그 사회는 정의구현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순수한 양심과 이성에만 의지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도덕적 행동이 개인과 집단에서 차이 나는 원인을 정확히 이해해야 이와 관련된 사회문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사회에 만연된 집단 이기주의 현상을 바라보는 정확한 시선은 물론이고 해결의 실마리도 함께 제시한다.
알림: 생소한 용어들이 많이 있어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번역어’와 한국어는 다릅니다. 🥵
용어 정의
- 용익권 [用益權]
- 일정 기간 동안 타인의 소유물을 그 본체를 훼손하지 않고 사용하여 거기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
- 페이비언 주의 [Fabian主義]
- 특정 개인이나 계급 집단이 토지와 산업 자본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사회를 다시 조직하자는 이론
- 프티 부르주아 [petit bourgeois]
-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중간에 위치하는 소생산자, 소상인, 봉급생활자, 하급 공무원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 테제 [These]
- 헤겔의 변증법에서, 논리를 전개하기 위한 최초의 명제. 또는 사물 발전의 최초의 단계.
- 과두 정치 [寡頭政治]
- 소수의 우두머리가 국가의 최고 기관을 조직하여 행하는 독재적인 정치.
- 소요 [逍遙]
- 쓰여지거나 들게 되다. 어떤 일에 요구되거나 필요한 바
- 병탄 [竝呑/倂呑]
- 남의 재물이나 영토, 주권 따위를 강제로 제 것으로 만듦
- 의회주의 [議會主義]
-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이 가능하다고 보는, 공산주의 내의 수정주의적 입장.
- 선험적 [先驗的]
- 대상에 관계되지 않고 대상에 대한 인식이 선천적으로 가능함을 밝히려는 인식론적 태도를 말한다.
- 향배 [香陪]
- 좇는 것과 등지는 것이라는 뜻으로, 일이 되어 가는 추세나 어떤 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이르는 말.
- 일양 [一樣]
- 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꼭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