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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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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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김영사 #2007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When one person suffers from a delusion it is called insanity. When many people suffer from a delusion it is called Religion.

Robert Maynard Pirsig

요즘 뉴스의 지면은 물론이고 유명한 커뮤니티의 게시판은 온통 특정 종교단체 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 코로나19 전염의 역학 고리를 조사하자 그 전염 루트의 상당 부분이 대구, 경북 지역의 종교 단체와의 연관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 정치적 이념을 빌미로 갈등을 유발하고 싶지는 않다. 이럴 때 일수록 구성원들을 믿고 정부의 대책을 침착하게 따르는 것이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많은 분께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

신과 함께

내가 궁금한 것은 ‘그 종교’의 신도들이 했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19 확진자로 판명되었음에도 발원지인 중국 우환 여행경력과 국내 이동 경로를 숨긴 다거나, 정부의 격리조치를 거부하고 공공장소를 서슴없이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확진자와 동일한 장소에서 예배를 본 명단을 공개하라는 정부의 요청을 그 종교단체 지도부는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거부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공개했지만 누락된 명단이 많았고 결국 공권력이 투입되고 나서야 명단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특정 커뮤니티에 공개 되었지만 채팅 채널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고 무섭기까지 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려는 노력과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보다 신앙의 전도가 그들에겐 더 중요했던 것일까? 그들은 왜 그런 걸까? 할 수 있다면 빙의라도 해서 알아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한 비합리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발 더 나아가 왜 사람들은 종교를 믿고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일까? 인류에게 종교와 신은 어떤 의미일까? 정말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차에 발견한 책이 바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다. ‘책의 가치는 읽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구매하는 데 있다. 🤣 ’라는 명언을 따르고자 예전에 사기만하고 묵혀두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목차부터 느껴지는 난이도와 엄청난 양의 페이지에 질려버렸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종교라는 주제가 생소하고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완독하고 뿌듯해하던 행복한 추억이 있다. 이같은 저자에 대한 신뢰는 앞으로 읽을 책에서 나의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게 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지구에서 인간의 위치와 존재이유는 유전자 보존을 위한 도구라고 냉철하게 파악 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다윈주의 논리는 생명의 계층 구조에서 살아남아 자연선택이라는 여과지를 통과하는 단위(유전자)가 이기적인 경향을 지닐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저자 소개

리처드 도킨스는 1941년 3월 26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2차대전 중 연합군으로 영국에서 케냐로 이주하였으며 도킨스가 8세가 되던 1949년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1954년부터 1959년까지 온들 스쿨(Oundle School)을 다녔다.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동물학을 수학했는데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인 동물행태학자 니콜라스 틴버겐(Nikolaas Tinbergen)교수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962년에 옥스퍼드를 졸업했다. 그 후 옥스퍼드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도킨스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물학 조교수로 재직한다. 이 시기 UC 버클리에서는 당시의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운동이 거세었는데 도킨스도 행동가로서 베트남 반전 운동에 깊이 개입했다. 1970년에 다시 옥스퍼드로 동물학을 강의하러 돌아왔으며 현재까지 옥스퍼드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5년에 석좌교수에 임명되었다.

정확한 질문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이 끌렸던 주제는 ‘부산물로서의 종교’였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종교단체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허무맹랑한 종교적 논리가 아니라 진화론의 자연선택과 같은 과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내가 궁금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했다. 책에서 도킨스는 종교를 다른 무언가의 부산물로 보며, 그의 전공인 동물의 행동에 비유해서 부산물의 개념을 설명한다. 내가 찾은 답은 ‘올바른 질문이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있게 한다.’였다.

나방이 촛불을 향해 날아드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자기희생 혹은 자살처럼 보이는 이러한 행동이 어떻게 자연선택이 선호 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런데 질문을 바꾸면 다르게 보인다. 앞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잘 따라오면 자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자살처럼 보이는 겉모습은 다른 무언가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자 부산물이다.

인공조명은 최근의 것이다. 오래전부터 곤충들이 밤에 볼 수 있는 빛은 달빛과 별빛이었다. 이러한 빛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나방에게는 일정하고 평행한 광원으로 인식된다. 실제로 곤충은 해와 달 같은 천체를 이용하여 직선으로 날아갈 수 있고 나침반처럼 사용한다. 곤충의 유전자에는 아마도 ’빛이 30도 각도로 눈에 들어오도록 나아가라’같이 저장되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곤충이 30도 각도의 경험 법칙을 가까운 거리의 촛불에 적용하려고 하면 그 빛은 평행이 아니라 바큇살처럼 퍼지는 형태로 인식되고, 나방은 나선 궤도를 그리며 불꽃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실제로 30도 법칙(예각)을 이용해 직접 그려보면 촛불을 향해 나아가는 우아한 로그 나선이 나타난다.

인공조명 주변에 나방을 떠올려보자

달보다 촛불을 볼 기회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나방의 이러한 경험 법칙은 생존에 유리하다. 하지만 우리는 나방이 달과 별을 이용해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모르고, 촛불을 향해 빙빙 돌아가는 나방만을 보고 잘못된 질문을 던진다. ‘왜 나방은 자살하는 것일까?’가 아니라 ‘우리는 왜 나방이 빛에 대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례만을 보는 것일까?’라고 바꿔야 한다. 질문을 바꾸면 수수께끼는 풀린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유용했던 나침반이 만들어낸 빗나간 부산물이었다.

믿음의 법칙

이제 그 교훈을 인간의 종교적 행동에 적용해보자. 우리는 어렵지 않게 과학적 사실과 명백히 모순되는 신앙을 볼 수 있다. 그런 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믿을 뿐 아니라, 손실을 무릅쓰고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다. 나방의 자살 행동처럼 보이는 것에 의아해했던 것처럼 이러한 인간의 종교적 행동에 놀라기도 한다. 당혹스럽지만 한편 과연 왜 그런지 궁금증이 생긴다.

다시 말하지만,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종교적 행동은 빗나간 것 즉, 다른 상황에서는 유용한 혹은 과거에는 유용했던 심리적 성향의 불운한 부산물일지 모른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에게서 자연적으로 선택된 성향은 종교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또 다른 어떤 혜택이었고, 그것이 부수적으로 종교적 행동으로 발현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종교적 행동에 새 이름을 붙인 뒤에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가설은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잠시 컴퓨터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 컴퓨터도 주어진 명령에 노예처럼 복종한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수적인 결과로서, 나쁜 명령에도 복종한다. 바이러스와 웜 등에 취약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복사해서 네가 이 하드디스크에서 찾아내는 모든 주소로 보내라”와 같은 악의적인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복종할 것이고, 그 프로그램을 수신한 다른 컴퓨터들도 똑같이 그 프로그램에 복종함으로써 감염된 컴퓨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유용하게 복종하면서 동시에 감염 면역력이 강한 컴퓨터를 설계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주제로 다시 돌아와서, 자연선택은 아이의 뇌에 부모나 다른 어른이 어떤 말을 하든 믿는 경향을 심어놓았다. 그렇게 믿고 따르는 것은 생존에 매우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방이 달을 기준으로 나아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믿고 따르기 이면에는 절대적 복종이라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마음 바이러스에 대한 취약성이라는 부산물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아이는 좋은 조언과 나쁜 조언을 구별한 방법이 없다. “절벽 근처에 가지 마라”는 생존에 좋은 조언이지만, “보름달이 뜰 때 염소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는 시간과 염소를 낭비하는 조언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둘 다 믿을만한 것처럼 들린다. 둘 다 위엄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며, 존경과 복종을 요구하는 엄격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전달된다. 세계, 우주, 인간 본성에 관한 조언도 마찬가지다. 그 아이가 자라서 아이를 갖게 되면 똑같이 엄숙한 방식으로 그 가르침(의미 있는 것뿐 아니라 무의미한 것까지)을 통째로 전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별로 사실적 근거가 전혀 없는 서로 다른 임의의 신앙이 대물림될 것이고, 그 신앙은 생존에 필요한 지혜와 똑같은 확신하에 믿고 널리 퍼지게 된다. 결국 이처럼 종교는 정상적인 심리적 성향(어른의 말을 믿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의 부산물일 수 있다.

이성과 신앙

나방이 인공조명으로 달려들어 자살을 시도한다? 질문이 잘못됐다. 빛을 향하는 행동이 생존에 유리한 것이라는 유전적 반응의 부산물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종교를 의지하는 이유를 생존에 유리한 성향의 부산물로 설명할 수 있다. 아이들은 권위 있는 존재에게 듣는 말을 따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며, 그러한 것 중에 종교적 행동과 관련된 조언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처럼 종교는 정상적인 심리 성향의 부산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예상한 데로 나의 궁금증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나와 비슷하게 종교와 신의 존재를 고민하고 있다면 읽어보기 바란다. 인간은 신의 존재와 무관하게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종교가 인류에게 해악을 끼친 경우가 더 많이 있으며 무신론과 과학(진화론)은 거의 완벽하게 종교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무엇이 되었든(내가 가졌던 기존의 생각들을 포함하여)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심해보고 반박하는 습관과 용기라고 생각한다.

책의 단점을 굳이 말하자면 저자의 꼼꼼한 성격 덕분에 책의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다. 나와 같은 독서 초보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마저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세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종교 세력을 논리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저자의 용기와 해박한 지식이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의 독자들 특히, 종교인과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저자의 작은 실수도 놓치지 않으려고 아마 눈에 불을 켜고 책을 쳐다보지 않았을까? 이러한 것을 예상한 저자의 철저한 자료조사와 수많은 고민은 결국 책을 쉽지 않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