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유산
징비록의 목적
역사에 목적이 있다면 텁텁한 자부심보다는 담백한 성찰일 것이다. 징비록에서 ‘징비(懲毖)’는 ‘내가 그 잘못을 뉘우치려 경계하여 나무(懲)1라고 훗날의 환난이 없도록 삼가고 조심(毖)2한다(予畿懲而毖候患)’는 《시경》의 구절에서 딴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덮고 다시 펼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서애 선생의 글에서 느껴지는 참담한 조선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 게다가 현재 대한민국과의 소름 끼치는 유사함에 계속 책을 읽어나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도 영광의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님을 알기에 책을 다시 펼쳤다. 제목처럼 나무라고 조심하는 성찰의 자세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도요토미와 아베
읽기가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징비록을 굳이 찾아서 보게 된 이유가 있다. 최근 일본의 아베 정부와 무역갈등 과정을 보면서 어떤 자세로 대응하는 것이 좋을지 해답을 찾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제로 서애 선생의 징비록에는 유용한 답들이 있었고, 현시대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정읍 현감 이순신(李舜臣)을 발탁,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삼았다.
역시는 역시였다. 외부세력 침략(정한론)으로 고대사에 대한 열등감 극복을 하려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고대사에서나 있을법한 제정일치 국가를 꿈꾸는 아베와 닮아있다. 시대착오적인 두 지도자 모두 결국은 동아시아 전반에 참혹한 불행을 가져올 뿐이었다. 한편 임진왜란의 가장 피해가 컸던 조선에 진정한 적은 왜구가 아니었다. 200여 년간 유지된 평화가 가져온 안일함과 부패한 지배 세력이 조선의 최대 약점이었다.
내가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
임진왜란 초기의 추풍낙엽같이 무너지던 조선의 여건을 뒤집은 것은 항상 비주류로 취급받던 이순신과 의병들이었다. 이번에도 황당한 일본의 무역 제재에 정수로 응수한 것은 일반 시민들이었다.역사에서 성찰을 배운것은 우리 시민들이었고 텁텁한 자부심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은 부패한 권력들이었다. 유성룡 선생이 후손들에게 징비록을 남긴 목적은 책의 제목처럼 명확하다. 똑같은 실수를 절대 하지말라는 메시지일것이다. 자신이 섬기는 왕이 침략국의 장수를 피해 도망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꼈을 좌절감은 징비록이라는 위대한 유산으로 승화되었다.
2020년… 이제 대한민국은 일본뿐아니라 주변 강대국들과의 복잡한 역학관계에 놓여있다. 이번 일본과의 갈등과 유사한 일은 더욱 빈번할 것이라면 과연 우리는 어떤 자세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역사의 성찰을 통한 준비가 정답이라고 서애 선생의 징비록은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대답하고 있다.
앞장섰던 수레가 뒤집혔으면 빨리 고쳐야 한다. 그런데도 고칠 생각은 않고, 왜 뒤집혔는지는 따져보지도 않고 뒤집힌 수레의 바퀴 자국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만을 믿는 어리석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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