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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전쟁은 그리스 문명의 최대 위기였다. 하지만 위기는 기화라고 했던가? 이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강력한 폴리스로 부상한다.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은 고대 그리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자 특이점이다. 책이 다루는 기간은 전쟁의 원인(두 문명의 건국배경도 포함)부터 크세르크세스의 귀환까지이다. 특히 페르시아의 건국과 발전과정을 다루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스가 페르시아 독재를 타도하겠다고 맹세해놓고 전쟁이 끝난뒤 몇 십 년 동안 페르시아의 방식을 모방하는 자가당착에 빠져든 것도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란 의미가 이런 것일까. 보는 위치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바뀐다는 유명한 조언은 아테네에게 아주 적절한 충고일 것이다.

대왕의 사절이 열문으로 다시 와 무기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자 레오니다스는 라케다이몬인답게 한마디로 잘라 이렇게 말했다. “직접와서 가져가시오 Molon labe(고대 그리스 어로).”

몰론 라베 (Molon labe)는 ‘와서 가져 가라’라는 뜻으로 고전적인 도전의 표현이다. 플루타르크가 보고한 간결한 문구 중에는 스파르타 인들이 무기를 포기하라는 크세르 크세스 1 세의 요구에 대해 레오니다스 1 세 왕이 대답한 것이다.

“대중은 윽박지르고 귀족은 추켜세워라”는 페르시아의 기본정책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진가를 발휘했다.

기원전 5세기에도 정치는 비슷했다. 다리우스는 이미 식민지 지배에 관한 원칙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디바이드 & 룰’은 제국주의 표방한 근대의 여러나라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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