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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 해전은 그리스 문명 전체의 운명의 좌우했던 전투였다. 하지만 이 전투는 두 문명의 만남이었지 결말은 아니었다.

헤로도토스의 아테네 민주주의 평가는 그의 저서 『역사』에 잘 나와있다.

아테네는 참주 아래 있을 때는 전쟁에서 이웃 나라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참주들이 제거되자 그들 중 최강국이 되었다. 이것은 아테네인들이 압제를 받고 있을 때는 주인이 시키니까 마지못해 일하는 노예처럼 전쟁에서 일부러 형편없이 싸웠으나, 압제에서 풀러나자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싸웠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기원전 지식인의 아테네 민주주의 평가는 상당히 현실적이었다. 헤로도토스가 『히스토리아이』를 저작한 이유는 서문에 분명히 나와있다.

“내가 특히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인과 이민족 간에 생겨난 적대감의 원인이올시다.”

헤로도토스가 이같은 저서를 제작한 이유는 두 문명의 갈등의 원인을 2500년 전을 살았던 역사학의 시조도 궁금해했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도 역사를 연구하고 배우는 목적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코린트인 지휘관 아디만토스가 말참견을 하고 나섰다. “테미스토클레스여, 경주에도 신호가 떨어지기 전에 출발하면 심판의 채찍을 맞는 법입니다.” 이것은 우스갯소리를 가장하여 규정 위반에 일침을 가한 모욕이었다.테미스토클레스는 그의 말에 이렇게 응수했다. “맞소이다. 그러나 뒤처진 사람은 승리의 월계관을 쓰지 못하겠지요.”

살라미스해전 이전부터 아테네와 코린트의 갈등은 첨예했다. 해상무역을 주소득원으로 국정을 운영했던 코린트에게 아테네의 부상은 위협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해상력 강화를 기치로 아테네를 이끄는 테미스토클레스는 곱게 보일리 없었다.

(중략)… 아테나 여신에게 적군에 유린되지 않을 유일한 장소인 목재 담장을 주시아, 너희와 너희 자식들을 보호해줄 것이다. (중략)… 너희들은 결국 적군과 대적하게 된다. 오, 거룩한 살라미스여, 그대는 파종기나 수확기 중의 한때에 여인들의 아들들을 분쇄하게 되리라.

신탁을 듣기 위해 아폴론 신전에 도착한 아테네 사절단, 그들의 표정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웠다. 하지만 델포이 신녀가 무슨 질문을 할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테나의 운명에 저주를 퍼부었을 때는 절망을 넘어 현실이 되어버린 망국의 공포로 적막만이 흘렀을 것이다. 침묵을 깬 것은 “다시… 다시 한 번만 살펴주십시오.” 가 아니었을까? 두 번째 신탁은 그나마 희망적이었지만 뜬금없는 ‘목재 성벽’, ‘살라미스’, ‘아들들의 분쇄’는 사절단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델포이 신탁은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테미스토클레스의 강력한 우군이 되었다.

페르시아 군은 충격, 지휘 방식, 지형. 이 세가지의 단순한 구조물을 잘못 배치하는 바람에 페르시아 군의 맹공이 되었어야 할 전투를 그리스 군의 덫에 걸려드는 결과로 바꾸어놓았다.

페르시아는 왜 패배했나!! 그 시대를 가장 가깝게 경험한 헤로도토스는 양군의 ‘질서의 차이’를 전쟁승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수많은 학자와 전문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치밀하게 분석하게 되는데 ‘정신적 충격’, ‘지휘 방식’, ‘지형’을 그리스군의 일방적인 승리 원인으로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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