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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이스라엘 학자가 책 한 권으로 인류 역사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었다.우주와 지구의 탄생, 사피엔스의 진화 과정, 문명의 발달과 미래까지 장구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저자만의 특별한 상상력이 전개한다. 기존에 우리들을 지배해왔던 상식들을 저자는 합리적이고 냉철한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독자들에게 공감을 끌어낸다.

자연스럽게 빅 히스토리의 대명사인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가 연상된다. 두 책의 차이점이나 유사점을 발견하며 읽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지 모르겠다.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 등 디테일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멀리서 숲 전체를 바라보며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두 책은 후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저자의 가설이나 상상력의 근거로 제시되는 역사적 기원들도 배경지식을 쌓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사피엔스에게 수렵 채집보다 농경 생활이 과연 더 행복한 것일까?
  • 자본주의는 종교와 다른 것일까?
  • 현재 대부분의 인류는 제국주의 후손이지 않은가?

약 3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에는 최소한 여섯 종의 호모(사람) 종이 있었다.

동부 아프리카에는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아시아 일부에는 직립원인이 거주했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이름이 예언자나 시인, 위대한 정복자가 아니라 회계사의 것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류를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로 인식하기엔 너무 많은 사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기원을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언어, 철학, 종교 같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들이 발전되어온 유구한 시간은 지구 진화의 시간 앞에서는 찰나의 순간이다. 우주에서 지구의 존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 우리의 아주 오래된 선조들은 지구 생명체의 한 종에 불과했던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고 있었을 뿐이다. 인류는 편협했던 시선을 인정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런 악순환은 수세기 수천 년 지속되면서 역사적으로 우연히 발생한 질서에 불과한 상상의 위계질서를 지속시킬 수 있다. 부당한 차별은 시간이 흐르면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돈은 돈 있는 자에게 들어오고, 가난은 가난뱅이를 방문하는 법이다. 교육은 교육받은 자에게, 무지는 무지한 자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역사에서 한번 희생자가 된 이들은 또다시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의 특권을 누린 계층은 또다시 특권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인정하기 불편하겠지만 인류에게 노예제만큼 독보적으로 익숙한 사회체제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오랫동안 한 것이 가장 쉽고 익숙하기 마련이다. 사피엔스의 탄생 이후 노예제 철폐를 주창한 시기도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노예제에서 파급된 계급 간 차이는 결국 현대에 와서 ‘부의 양극화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부의 양극화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기 어렵게 되었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나 나치즘 같은 종교는 불타는 증오심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새로운 자본주의 교리에서 가장 신성한 제1계율은 “생산에 따른 이윤은 생산 증대를 위해 재투자되어야 한다”이다.

중세의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은 가상의 사후세계를 빌미로 특권과 엄청난 부를 누렸다. 히틀러도 인종차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독일을 나치즘이라는 가상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결과는 홀로코스트 같은 참혹함뿐이었다. 대부분의 인류는 언제부터인가 자본주의라고 명명된 가상의 시스템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결과는? 다행히도 아직 진행 중이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수혜를 누렸었고, 누리고 있는 전문가들뿐이다. 이렇듯 종교(중세 기독교), 나치즘 그리고 자본주의의 큰 차인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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