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전 길잡이
앎(사실)과 판단(가치)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올바른 가치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왜 과학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과학과 인문학이 왜 융합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대답은 없을 것이다.
인문학과 과학은 ‘사실과 가치’ ‘객관성과 주관성’ ‘이성과 감정’처럼 단순히 구분되거나 혹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오래된 염원인 ‘진리의 탐구’를 향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유사하고 상호보완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인 정은경 박사는 주장한다. 가치중립적이라는 핑계로 문명의 도구로 악용되어온 과학은 이제 인문학과 더불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가장 정확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대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적 ‘사실’에 기초한 올바른 ‘가치판단’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우리의 과학 공부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과학이 지식으로서 가치가 있으려면 삶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쳐야 함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과학기술은 도구가 아니며 그 어느 때보다 과학의 윤리적·철학적 성찰이 필요한 시대임을 역설한다. 더불어 과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마음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은 오랜 세월 한국 독자들에게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책들이다. 하지만 그 내용과 부피 모두가 만만치 않아서 끝까지 읽은 독자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워낙 유명해서 일단 사두기는 했지만 읽기에는 쉽지 않은 과학 고전들을 저자만의 통합적인 관점에서 친절하게 설명함으로써 재도전(?)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이외에도 뉴턴, 갈릴레오, 다윈, 스티븐 호킹, 프랜시스 크릭, 샘 해리스 같은 과학자들의 대표 저서는 물론 롤랑 바르트, 이탈로 칼비노, 조지 오웰, 프리모 레비 등의 문학작품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들의 대표작까지 핵심만 간추려 소개한다.
『과학을 읽다』에서 소개하는 책
-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 도널드 조핸슨의 『루시, 최초의 인류』
- 스티븐 미슨의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
-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
- 갈릴레오의 『갈릴레오가 들려주는 별 이야기-시데레우스 눈치우스』
- EBS 다큐프라임의 『빛의 물리학』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
- 조지 오웰의 「교수형」
- 에른스트 마이어의 『진화란 무엇인가』
-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
-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 로돌포 이나스의 『꿈꾸는 기계의 진화』
- 프랜시스 크릭의 『놀라운 가설』
- 폴 새가드의 『뇌와 삶의 의미』
- 샘 해리스의 『신이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몇 가지』
우리가 과학 공부를 하는 목표는 지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지식이 왜 중요한지를 알고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 예컨대 우주와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 이런 것이 과학 공부의 목표다. 나는 ‘인간은 진화했다’나 ‘마음은 뇌의 활동이다’와 같은 과학적 사실은 지식이 아니라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과학 고전들을 작가의 해설을 추가하여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과학에서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과 철학을 폭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기에 역사와 철학의 문제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우주, 인간, 뇌과학의 세계로 점차 확장해가는 방식을 취한다. 챕터별로 선정된 과학 고전의 주제들은 무겁지만, 저자의 친절하고 쉬운 설명 덕분에 무척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다. 이렇게 작가의 생각을 차분히 읽어나가면 과학 특히 순수과학 도서는 난해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신기하게도 어느덧 도전과 호기심으로 바뀌어있다.
저자인 정인경 박사는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처럼 문과와 이과를 두루 섭렵한 저자는 삶에 밀착된 공부여야만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인문학과 과학의 벽을 넘어 통합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만큼 이 책은 문과와 이과를 놓고 고민 중인 학생은 물론 평소 과학을 어렵고 멀게만 느껴온 일반 독자와 숫자와 공식에 갇혀 인문학적 감수성이 전무한 과학 분야 전문가들까지 모두에게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을 읽다』는 과학 관련 서적의 탐독을 희망하지만, 너무 막막해서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우리 독자들의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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