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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페스트를 갖고 있다. 20세기 중반 프랑스 식민지이자 아프리카 북부지역인 오랑에서 페스트를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

“됐어요.” 하고 그는 말하는 것이었다. “그놈들이 다시 나와요.”

“누가요?”

“쥐 말이에요, 쥐!”

지난 4월 이후로 죽은 쥐는 단 한 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면 다시 시작된다는 건가요?” 하고 타루는 리유에게 물었다.

노인은 손을 비비고 있었다.

“놈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꼭 봐야 한다니까요! 정말 기분 만점이죠.”

카뮈는 세계 2차 대전을 거치며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수용소와 같은 ‘단절’, ‘격리’, ‘고립’을 경험한다. 다시 말해 ‘페스트’는 곧 ‘전쟁의 부조리’를 상징한다고 말해도 큰 무리가 없다. 오랑 이라는 프랑스 식민지는 페스트라는 전염병으로 모든 세계와 갑자기 ‘단절’되고 그 안에서의 여러 인간 군상들은 그러한 ‘고립’을 나름의 방식으로 견뎌낸다.

현재의 우리도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전 세계적인 범유행 현상을 겪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그래서 보다 진지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표준화와 대량생산으로 문명의 발달을 이끌어온 인류에게 코로나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고립은 벗어나기 위한 너의 정답은 무엇인가?

명확한 해답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저항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자세가 정답이 아님은 분명하다. ‘반항’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줄 아는 자세, 현재 인류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무기는 ‘반항’이지 않을까?

오랑에서 페스트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갔다고 말하는 게 적절하다. 위대한 영웅의 등장으로 페스트를 ‘정복’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페스트가 출현했을 때도 아무런 이유가 없었듯이, 평범한 소시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일을 하며 ‘견딘다’가 페스트는 서서히 물러나게 된다. 그래서 페스트가 상징하는 바가 전쟁이나 대자연의 재앙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부조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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