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분 소요

들어가며

우리는 ‘자유’라는 단어를 진지하고 깊이있게 생각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자유가 공기나 물처럼 우리의 삶에서 당연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유의 의미나 정의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실제로 누군가 나에게 “자유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당장은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막막함을 넘어 정신의 아득함을 느낀다. 만약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내놓겠는가?

순환논리 같긴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자유를 모르는 이유는 결국 자유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면 나의 자유는 현재 인정받고 있는 것인지, 타인의 자유를 내가 침해하고 있는지, 정부를 비롯한 권력기관에서 개인의 자유는 제대로 인정 받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가지는게 인문학이지도 모르겠다. 150년 전 영국에서 이와 동일한 고민을 한 사상가가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자유에 관한 명료한 정의는 물론이고 자유의 기본적인 영역, 자유의 원리, 자유의 한계, 자유의 역사 등 자유와 연관된 대부분의 주제를 다룬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주제일 것 같지만 의외로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것이 자유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자유에 관하여

이 책의 논리 전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책 전체의 기본 명제를 이해하고 동의할 필요가 있다. 사회가 개인의 대해 강제나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하기 위해 저자인 밀은 다음과 같이 자유에 관한 원리를 정의한다. “인간사회에서 누구든 — 개인이든 집단이단 —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자유의 한계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기 전까지라는 말이다.

저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인간 자유의 기본 영역을 내면적 의식의 영역, 기호와 희망의 추구, 결사의 자유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우선 내면적 의식의 영역에서 자유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제적이거나 사변적인 것, 과학∙도덕∙신학 등 모든 주제에 대해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 그리고 절대적인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 즉, 각각의 개성에 맞게 자기 삶을 설계하고 자기가 좋은 대로 살아갈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개인의 자유에서 이와 똑같은 원리의 적용을 받는 결사(結社)의 자유가 도출된다. 다시 말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그리고 강제나 속임수에 의해 억지로 끌려온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성인이 어떤 목적의 모임이든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음의 네 가지 이유를 근거로 다른 의견을 가질 자유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1) 침묵을 강요당하는 모든 의견은, 진리일 가능성이 있다. 2)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일정 부분 진리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3) 통설이 진리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해도, 다른 의견과 토론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진리의 합리적인 근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4) 또한, 그 주장의 의미 자체가 실종되거나 퇴색하면서 사람들의 성격과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주제는 스스로 책임지는 한, 다른 사람에게서 모든 물리적∙도덕적 방해를 받지 않고 각자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자유, 즉 ‘개별성’에 관한 고찰이다. 밀은 개별성은 결국 인류 문명 발전의 핵심 요소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천재들의 재능 발현에도 ‘자유로운 개별성’이 최우선 조건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현재(18세기 후반)는 대중 여론과 관습의 전제(專制)로 개별성은 큰 시련을 겪고 있다. 하지만 유럽 발전의 기저에는 문화의 다양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자유의 정의, 자유의 영역, 개별성과 다양성의 가치 등을 논의한 궁극적인 이유, 즉 『자유론』을 통해 존 스튜어트 밀이 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결국 ‘어느 경우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정당한가?’ 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밀의 대답은 명확하다. “어떤 행동이든 그것이 또 다른 사람의 이익에 부당하게 해를 가하는 것이라면 사회(정부, 국가, 공동체)는 그러한 해를 가하는 행동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사법적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며, 사회가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런 행동에 대해 사회적 또는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논리적으로 이러한 ‘부당하게’를 정확히 정의하기 위해서는 ‘입법’의 관한 논의로 이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밀은 『자유론』의 범위 밖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에게 자유란?

누구든지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If a person possesses any tolerable amount of common sense and experience, his own mode of laying out his existence is the best, not because it is the best in itself, but because it is his own mode.

이 책이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의 중요함만을 끝까지 주장했다면 이렇게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자유의 절대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지만 이를 넘어 ‘개개인의 무한한 자유(개별성) 추구가 사회를 이루는 공동체에도 좋은(유리한, 올바른, 정당한) 것일까?’라는 질문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21세기인 지금까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유의 한계를 ‘타인의 자유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독자들의 생각 폭을 더욱 넓혔다고 할 수 있다.

책에 담긴 문장들을 찬찬히 곱씹어 보면, 저자의 ‘his own mode’를 엿볼 수 있는 지적이고 차분한 문체와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가득 찬 책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고전’이라는 서적들의 공통점인 장르를 초월한 감동이 『자유론』엔 차고 넘친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 저자의 인품이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일 텐데 그의 학자적 탁월함, 인류에 대한 애정, 철학적 진실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자유론』은 1859년 밀의 나이 53세 때 출판되었다. 약 150년 전에 저술된 책이라고 하기에는 책의 주제, 수려한 문체, 논리 전개 방식, 저자 사상의 치밀함 등이 놀랍도록 세련되게 느껴진다. 자유를 논한 교양서를 넘어 앞으로 살아갈 때 필요한 인생의 푯대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자유’의 의미를 생각해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 지금 ‘자유’가 없다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소중함을 몰랐던 가치이자 인간 삶의 전제조건인 자유, 19세기 영국 사상가의 정수가 담긴 『자유론』을 읽으며 함께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댓글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