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해체
21세기 미국의 민주주의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누군가에게는 영광과 승리로 기억되겠지만, 전제주의의 전조로 보이는 그의 정치적 행보는 미국 사회를 극단적인 양극화의 전장으로 몰고 간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극단적인 양극화의 원인, 지지하는 정당의 차이만으로 이러한 미국 사회의 특성을 완벽히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백인과 유색인종, 개신교와 무신교는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미국 공화당의 ‘자기 땅의 이방인’이란 말은 언어도단이다. ‘개신교를 믿는 백인’은 원래부터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실 미국의 건국은 유럽에서 온 이민족이 신대륙의 원주민을 식민지화하면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역사적으로 더욱 합당하지 않을까?
첫째. 잠재적 독재자를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있다는 착각이다. 둘째, 사회학자 이반 에르마코프van Emakoff가 ‘이념적 공모deological collusion’라고 부른 개념으로, 이는 집단적 포기를 택한 주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잠재적 독재자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경우에 해당된다.
정치인이 예비 독재자(위험한 아웃사이더)를 방조하는 두 가지 이유는 사실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정치적 목적이 유사하다는 사실은 ‘통제 가능한 사안’이라는 의구심을 합리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위기 극복의 동력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언제나 커다란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한다. 유명한(?) 독재자들의 특성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작된 혼란’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히틀러의 수권법, 푸틴의 체첸 공격, 터키 에르도안의 이슬람 탄압은 다른 국가, 인종, 문화, 지역이었지만 사회 혼란을 적절히 이용해 독재자 자신의 권력 유지했다는 점에서 소름 돋을 정도로 비슷하다.
폭력과 쿠데타처럼 명시적인 폭력과 불법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서사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합법과 정의의 가면을 쓰고 마치 정당한 권력의 수호자 흉내를 내는 위험한 정치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치적 영향력 이 취약해진 지도자들이 반전을 노리며 새로운 인물을 영입할 때 자신의 책임을 절대로 남용해서는 안된다. 물러날 때 자신의 책임을 망각하게 되면, 사회는 급속하게 혼돈으로 빠지게 된다. 유권자들도 이를 유념하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파괴는 ‘규범’의 상실에서 기인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특히 상대 정당을 절명의 대상이 아닌 합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관용’과 합법적이라는 자기합리화 아래 파멸에 가까운 제제를 자제하는 ‘절제의 미덕’ 이 두 가지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규범’이다. 새로운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한국 사회는 특히 취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때문에 아직도 종북좌파 운운하며 근거 없는 정치공작을 일삼는 정당은 민주주의 파괴에 가장 헌신하는 세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서로를 합당한 경쟁자로 인정한다는 바탕 위에 타협과 토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 경쟁자가 적으로 변할 때 정치는 전쟁으로 전락하고 민주주의 제도는 무기로 바뀐다. 그 결과 사회는 끊임없이 위기를 맞게 된다.
또한 저자는 ‘규범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다.’ 이라며 미국 사회의 문제점인 상호관용과 절제의 미덕을 강조한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문화, 역사, 지형 등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특히 민주주의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의견에 한 표를 더 주고 싶다. 친일파와 군부 독재를 경험한 한국 정치에서 규범의 준수보다 유권자들의 의식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의 두 개의 기둥 ‘헌법 시스템’과 상호 관용과 절제를 강조하는 ‘규범’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한국과 미국의 역사적, 문화적 차이를 넘어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로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군부 독재와 맞물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그리고 압축해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한국은 제도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정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개인의 실제 삶 속에 민주주의가 규범으로 자리 잡기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한 불균형이 유시민 작가가 『후불제 민주주의』와 같은 책을 저술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먼저 쓴 민주주의의 대가를 치르는 과정 중에 있는지 모른다. 원금과 이자를 현명하게 갚는 방법,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읽어본다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댓글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