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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보다 유구한 저 망망대해를 ‘안다’는 것은 가능할까? 아마 대부분은 잔잔한 파도에 발목을 담그는 정도로 만족하게 될 것이다. 시선을 조금 올려다보면 막막함은 배가 된다. 영원 같은 어둠 속에 드문드문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있으면, 평생의 시간을 소모한다고 해도 광막한 우주(Universe)를 ‘이해’는 고사하고 ‘인식’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칼 세이건과 함께라면 이런 막막함은 기분 좋은 ‘산책’으로 바뀐다. 온 우주를 저자와 함께 산책하는 방법, 바로 『코스모스』를 탐독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이유나 목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흥미나 재미를 위할 수도 있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혹은 남들이 읽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이유 중 특히 ‘사유와 사고력의 성장’을 위해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코스모스』를 읽고 있으면 저자인 칼 세이건의 풍부한 지식을 듣는 것도 매우 즐겁지만, 그만의 매력적인 ‘코스모스적 지성’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여러 가지 과학적인 정보와 수학적 추리 그리고 인문학적인 감성과 논리로 그만의 탁월한 결론이나 예측을 도출하는 과정을 옆에서 같이하고 있으면, 마치 나의 인품도 덩달아 성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저자의 인품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유려하고 따뜻한 문체의 문장들은 자신도 모르게 『코스모스』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코스모스(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책의 첫 문장처럼 코스모스에도 이 책에도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단순히 우주(Universe)에 관한 것만을 다루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했고 살면서 ‘느끼는 것’ 그리고 앞으로의 ‘예측과 희망’을 모두 아우른다. 철학, 역사, 인문학, 신화, 종교, 물리학, 화학, 유전학, 수학, 진화론 등 그야말로 호모 사피엔스가 문명을 이룩하면서 거둔 대부분의 업적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천문학과 연관 지어 ‘과연 나는 무엇인가?’라는 인류의 근원적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 이 책의 전체 흐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신의 섭리라는 이름 아래 천동설로 문명의 시간을 반 이상 소비한 것이 인류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울 좋은 자기 합리화로 마치 지구는 물론 우주 전체를 지배할 듯한 오만함을 가졌던 것도 인류였다. 하지만 현실은 지구는 태양계에 묶인 행성의 하나일 뿐이며, 태양조차도 결국 은하단의 은하의 한구석을 차지할 정도로 초라하며 우리 은하단 은하도 결코 다른 존재들의 중심이라고 할 수 없는 ‘주변’ 정도일 뿐이다. 게다가 우리 은하에는 태양 같은 별이 수백억 개 이상 존재한다. 바다를 코스모스라고 한다면 인간은 모래 알갱이보다 못한 아주 초라한 존재라는 이야기다. 이처럼 저자의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코스모스와 대비되는 ‘지구와 인류의 초라함’이라는 불편한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독자마다 자기만의 해석이 있겠지만, 만약 『코스모스』를 이렇게 읽었다면 저자의 의도를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각각의 존재는 소중한 것이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없을지 모르지만, 나의 가치는 결국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를 더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코스모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지구를 대변해줄 존재는 현재까지 인류가 유일하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이유 혹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또 그게 어찌 보면 자연스럽기도 하다. 살아가는데도 그리 생각하는 게 편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가 고대와 중세를 지나 근현대를 거치며, 그렇지 않다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내가 태어난 목적이나 이유는 그다지 없다는 사실, 어찌 보면 불편하고 서글픈 현실이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그래서 인생은 가치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난 이유와 목적은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존재의 이유는 없지만, 의미는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지혜로운 스승과 함께한 산책으로 '이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내가 됐다는 생각' 에 뿌듯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에 아쉬움도 남았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 찌들어있어 나를 되돌아볼 기회가 없거나 친구, 가족, 직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 때문에 나만을 위한 시간에 목말라 있다면 『코스모스』를 읽어보자. 책 속에 있는 칼 세이건의 차분한 문체는 토닥거림처럼 느껴지고, 우주를 아우르는 지적인 문장은 배움이 되며, 신비로운 우주 이야기는 따뜻한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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