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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까지 그리스 문명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다룬다. 그 과정에서 꽃피웠던 찬란한 문화와 유산들의 가치도 함께 조망한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사 전체를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유대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분투의 과정’이라고 정리했다. 구석기, 신석기, 암흑시대, 아르카이크 시대, 고전 시대 그리고 마케도니아와 헬레니즘까지 물리적으로는 4000년에 가까운 기간을 정리한 것이지만 저자의 통찰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적합한 문장이다. 고대 그리스사의 핵심을 연대기 별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면 이 책의 선택을 추천한다.

그들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타협을 포기한 이런 자세는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하나의 결정적 순간이다.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결정하게 되는 순간, 그들의 솔직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그들도 마라톤이나 살라미스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리라고는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짧게 보면(?) 그 결정은 아테네는 결국 에게해를 지배하게 되면서 제국의 위상을 차지하게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좀더 길게 보면 스파르타, 마케도니아 그리고 로마의 식민지로 이어지는 결정이었다.

영어단어 ‘laconic’은 ‘말수가 적은’이라는 뜻인데, 스파르타 땅의 그리스식 명칭과 그곳 주민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스파르타는 소수의 지배계급과 절대다수의 피지배 계급이 공존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이 매우 보수적이었다. 공동체의 원활한 통제를 위해 그들만의 규율은 절대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통제와 절제의 미덕은 스파르타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 통제를 벗어나면 일탈과 부패의 독재자 모습을 보인 스파르타 출신 장군들이 많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사상, 이념, 제도는 없다’는 생각은 가설을 넘어 공리나 정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왜 아테네인들은 스파르타처럼 소수의 과두제로 나아가지 않고 민주제로 나아갔을까?

저자는 우선 인구의 급속한 증가를 원인으로 생각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아르카이크 시대 후반기부터 아테네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다. 추측 하기엔 암흑 시대의 그리스의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아테네 근처 아티카 지역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받았다. 인구 증가는 노동력과 식량생산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인구증가의 원인으로 작용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이같은 현상은 소수의 지배계층의 권력 집중을 필요하지 않았고, 재산이나 기득권의 차이가 참정권의 차이로 이어지는 현상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즉 남자 시민들 사이에서 평등주의의 인식이 자연스럽게 싹트게 되었다.

미술사에서 나오는 아르카이크 시대라는 용어는 ‘고풍’이라는 뜻이고, 대략 기원전 750년에서 500년까지 지속된 시기를 가리킨다.

아르카이크(고풍)이라는 말은 미술사와 관련된 개념이었다. 암흑시대를 거치고 서서히 문명 발달의 여명이 밝아오던 시기이다. 그리스 고전시대에 대비하여 이집트, 이오니아(근동) 문화에 영향을 받아 고풍적인 문화가 주를 이루었다. 또한 아르카이크 시대 초반과 암흑 시대 후반에 그리스 각지역에서 폴리스의 개념이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전시대에 이러한 폴리스로 인한 안정적인 정치 상황은 문화, 예술, 과학, 철학 등의 발전배경으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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