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신화
산티아고는 자기 고향의 오랜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 뜨기 직전’이라는.
유명한 책이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인제야 읽어보았다. 그리고 왜 많은 사람이 『연금술사』를 사랑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시골에서 양치기로 지내던 소년 산티아고는 늙은 왕을 통해 엄청난 ‘보물’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먼 타국(이집트)까지 여행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여정 중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모험에 관한 이야기가 『연금술사』의 전체 서사이다.
이 책의 저자인 파울루 코엘류는 1947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출생.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25세 때 연극연출가 겸 TV 극작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대중음악의 작곡·작사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세계적인 음반 회사의 중역으로, 돈과 명예를 다 잡았던 남자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는 800km의 길을 1달 동안 걸은 뒤 『연금술사』라는 제목의 책을 쓰게 된다. 1987년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의 대성공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의 자리에 올랐다. 이 작품은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번역되어 지금까지 2,000만 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산티아고는 오래전의 우리와 비슷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와도 닮았다. 그의 고민, 질문, 위험한 상상, 만나는 사람들, 사랑하는 연인, 깨달음 등 그의 모든 것이 내게 너무 익숙해서 나도 모르게 그의 여행길을 같이 걷게 된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지중해를 넘어 아프리카와 이집트까지의 여정을 함께하면서 나도 모르게 산티아고를 응원하게 된다. 그가 이루어낸 성공에 같이 기뻐하고, 그가 이겨내야 할 좌절과 실패는 이제 나의 슬픔이 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나’를 만난다. 『연금술사』가 독자들을 사로잡는 힘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기억하고픈 삶의 지혜가 될 아름다운 문장들이 보물처럼 책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다. 특히 그를 긴 여정으로 이끌었던 늙은 왕 멜키세덱의 충고는 무엇보다 큰 힘을 준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한국인이라면 부끄러울 그분 때문에 ‘온 우주’라는 표현이 조금 거슬린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는 훌륭한 문장이다. 간절함은 삶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간절함은 건강에 유익하다. 산티아고의 보물은 자아의 신화를 향한 희망 그 자체가 아닐까? 산티아고에게 감동을 준 것은 보물 곁에 있던 피라미드의 미소인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인연은 삶의 커다란 짐일 경우가 많다. 쓸데없는 사회적 관계에 연연하다가 정작 소중한 인연에 소홀히 하다가 후회하기도 한다. 익숙한 것을 지키다 보면 구차한 변명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서 ‘인생’은 가치 있는 것이고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행복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일은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한다. 행복은 발견이다. 또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하고, 숲을 보느라 나무를 보지 못한다. 나무와 숲 양쪽 모두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것. 어렵겠지만 이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산티아고의 독백은 물론, 그를 도와주는 주변 인물들의 인생의 진리가 담긴 대화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다시 시작할 힘을 준다. 그래서 반복되는 일상에 찌들어 번아웃 증상을 겪고 있는 독자에게 오아시스 같은 책이다. 또 잊고 있었던 보물 같은 나의 꿈을 돌이켜 보는 기회도 될 것이다. 산티아고의 보물은 여행이 시작된 곳에 있었다. 소중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그리고 근처에 있기에 그 소중함을 몰라볼 뿐, 우리 주변의 사람과 추억은 그 어떤 보물보다 소중한 것이다.
답답한 자신의 모습이 보기 싫을 때, 세상과 맞서느라 소진된 나의 영혼에 위로가 필요할 때, 친구도 가족도 나의 마음을 몰라줄 때 이 책을 읽어보자. 우리를 닮은 산티아고의 여정은 나에게 토닥토닥 말해줄 것이다. 괜찮다고, 그래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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