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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만큼 빨간색이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인식 가능한 빛의 한 구성 요소라는 객관적 사실을 넘어 이토록 이데올로기적인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혐오를 넘어 일종의 적대적인 분노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거부감은 ‘공포’를 합리화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수의 피지배계급에게 공산주의는 미래의 희망이자 체제 전복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소수의 지배계급에게 공산주의는 상대하기 껄끄러운 상대이자 절멸의 대상이었다. 다시 현실 문제로 돌아오면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은 전체주의, 폐쇄국가, 절대주의 그리고 독재라는 서글픈 결론 때문에 비난과 조소의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당시 만연해 있던 자본주의 폐단의 반작용을 출발점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비난에 앞서 공산주의 이러한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21세기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의 편중, 기회의 불평등, 능력 제일주의를 해결할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지 모른다. 우리가 마르크스 사상을 다시 바라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산당선언』은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가진 모순이자 문제점인 인간 소외와 부의 양극화를 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철학적이자 혁명적인 고찰이다.

『공산당선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두 가지 개념을 알아야 한다.

  • 부르주아 : 사회적 생산 수단의 소유자이며 임금 노동을 착취하는 근대 자본주의자 계급으로 이해된다.
  • 프롤레타리아 : 근대 임금 노동자 계급을 말하는데, 이들에게는 자신의 생산 수단이 없기 때문에, 살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일에 의존한다.

또 이 선언문의 논리 전개에 앞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두 가지 명제를 전제한다.

  •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프롤레타리아 vs 브르주아)
  • 공산주의 이론은 사적 소유의 폐지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생산 수단의 공공화)

하지만 이 두 가지 명제는 결국 마르크스 사상 비판의 핵심 전제이기도 하다. 공산주의는 생산 수단의 공유를 통해 지배 구조를 폐지하고 모든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고자 했으나, 생산 수단을 공유하고 관리하고 독점하는 사회 조직이 오히려 더욱 폐쇄적인 절대주의 국가를 산출해냄으로써 그 한계가 역사적, 임상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를 꿈꾸었던 공산주의는 결국 인간 해방을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의 구성을 잠시 살펴보자면 1장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자 동맹을 위한 강령으로 함께 집필한 『공산당선언』. 2장은 『공산당선언』이 씌어지기 전에 엥겔스가 강령 초안으로 집필했던 『공산주의의 원칙』. 그리고 3장은 『공산당선언』의 중판 및 번역본들의 서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야말로 공산당선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확실히 예전에 읽었을 때 보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물론 개정판을 선택했기에 추가된 정보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재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같은 책을 여러 번 본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 보는 것도 힘들고 지겨운 일인데 도대체 왜 같은 내용을 다시 읽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많은 독서가들이 재독을 추천하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전에 읽은 책이라도 다시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인다. 처음 볼 때와는 다르게 책 전체의 얼개와 저자의 의도를 대략 알고 있기 때문에 책과 나의 적당한 거리 유지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여유를 가지고 책을 읽다 보니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2021년,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꼭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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